'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7.08 남편, 아니 아빠가 변했다. (6)
  2. 2011.06.24 인류학자가 본 쌍자음의 세계 (6)

나는 이기적이고, 한 성질 한다. 다혈질에 호불호가 분명하고, 업앤다운이 좀 있다. 이미 혼인 시장에서는 노처녀로 분류되었을 때도 친정 엄마는 한 번도 결혼에 대해 압박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괜히 남의 집 귀한 아들 고생시킬까 봐!!!’였다. 그런데, 내 주위에서 뭣 모르고 어영부영 하던 남편이 얻어 걸렸다.^^

엄마는 “니 성격을 받아주는 사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천사!”라고 했고, 살아보니 남편은 짝퉁일지언정 천사라는 A급 브랜드를 달만 했다. 지랄 맞은 나랑 살면서도 남편은 화를 낸 적도, 큰 소리를 낸 적도 없다. 어떤 일에도 일희일비 하지 않고, 업앤다운 없이 편한 성격이다.(어떤 사람들은 이런 사람이 한번 화 내면 무섭다고 겁을 준다. 아직 때가 안 온 걸까? 흐흐흐) 그런 성격은 미치고 팔짝 뛸 일이 많은 육아에서 빛이 났다. 신생아 때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밤낮 없이 울어도 싫은 소리 한 번 안 내고, 안아달라고 보채면 팔이 떨어져 나가도록 안아주었다. 나는 그렇게 못하니, 자연스럽게 육아는 아빠 몫이 되어 갔다. 다른 건 몰라도 젖을 물릴 땐 재우는 건 내 몫이었는데, 이제 젖도 끊어지니 잘 때도 아빠에게 딱! 붙어서 잔다.


 

나는 이런 남편이 육아와 살림에 재능이 있다고 치켜세웠고, 남편도 그런 흑심(!) 가득한 칭찬을 싫어하지 않았다그리고 육아휴직, 또는 아예 전업주부가 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는 했다. 사람들은(특히 같은 엄마들은) 엄마를 귀찮게 하지 않는 우리 딸을 보고 ‘효녀’라고 했고, 나도 그런 딸에게 모성애보다는 무한한 동지애를 느끼곤 했다. ‘징징’거리거나 떼를 쓸때 ‘아빠한테 가봐!’라는 한 마디면 만사 오케이였다. 남편은 신기하게 아이의 요구나 불편을 알아내 해결해 주었다.(일례로 이가 나느라 아파하는 걸 먼저 알아채고, 최근엔 토마토 껍질이 입 천장에 붙어 ’낑낑’거리는 걸 보며 그걸 빼내주었다. 나는 절대 몰랐음-.-;;;) 특히 나는 아기가 울면 그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은데, 남편의 귀는 신기하게 잘 참아냈다. 불혹의 나이는 아직 멀었는데, 흔들림 없는 불혹의 정신은 높이 사줄만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요즘 남편의 입에서 슬슬 한숨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아기 목욕시키고, 책 읽어주다 재우고 나면, 자로 뻗어서 ‘아이고…’, ‘휴우~’ 톤다운된 한숨 메들리가 흘러나오곤 한다. 그런데 남편이 육아의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 시점이 하필 여름이라는 것이 문제다. 여름은 더위를 많이 타고 땀을 많이 흘리는 남편에게 쥐약이다. 안 그래도 가만 앉아있어도 더워죽겠는데, 요 껌딱지 같은 딸내미가 와서 달라붙으니 남편이 사정이 딱하다. 특히 밤에 문제다. 남편이 딸내미를 재워놓고 슬그머니 빠져 나와 자리를 옮기면 어느 샌가 알아채고 따라와 딱 붙는다. 그제 밤에는 방이 덥고 답답해서 슬그머니 거실로 나갔다고 한다. (나는 상황파악 못하고 쿨쿨^^) 소파에서 겨우 잠들었는데, 딸내미가 귀신 같이 따라 나와서 소파 위로 올라오더라는 거다. 이쯤하면 TV에서 기어나온 ‘링’의 귀신보다 더 무서웠을 듯^^.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나와보니 둘이서 대충 엉겨서 자고 있었다. 남편이 아직 꿈나라인 딸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깊은 한숨에는 딸바보로만 살았던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과 이제 손발 다 들었다는 포기,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묻어있었다.



대표 딸바보였던 남편, 지랄 맞은 내 성격도 참아냈던 남편이 점점 변해간다. 딸에게 딱 붙어서 충전하는 듯 했던 남편이 이제 좀 떼어달라고 나에게 SOS를 보내는 날도 있다.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며 아기를 달래고 어르던 남편의 입에서 자조적인 한숨 메들리 뿐만 아니라 치근거리는 딸에게 목소리를 내리깔고 경고성 멘트도 날리기 시작했다. 해도 별도 따다준다더니 하루 아침에 변심한 연인의 이별 통보를 받은 심정이 그럴까? 변심한 아빠를 보고 금방 울음이 터질락말락 울긋불긋, 표정이 아주 복잡미묘하다.(사실 아주 볼 만 했다.^^)



‘일 할래? 밭 맬래?’ 하면 ‘밭 맨다’는 말이 있는데, 새로운 속담 하나 추가다. ‘육아에 장사 없다!. 특히 혼자 하는 육아는 정말 답이 없다. 엄마, 아빠, 할머니, 도우미…누가 됐든 한 명이 육아를 전담하게 되면 누구라도 힘들 수 밖에 없다. 태초에 육아는 여러 사람이 같이 나눠 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걸 실감한다. 인류사를 보더라도 육아는 공동체 안에서 여럿이 하던 것이었다. 가끔 친정엄마가 옛날에는 애들을 몇 명씩 낳아 키웠는데, 기껏 아이 하나 키우면서 엄살이냐고 타박을 주지만, 옛날과 요즘은 비교 대상이 못 된다. 옛날에 내가 자랄 때만 해도 할머니, 할아버지,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 가며 공동체 안에서 자랐지, 엄마 손에서만 크지 않았다. 그때는 오히려 농구팀, 축구팀도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였지만, 공동체, 마을, 사회안전망도 무너진 요즘은 곡예 수준의 높은 희생 또는 자본을 요구한다.

요즘 부쩍 피로감을 호소하는 남편을 구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위기를 느꼈다. 더위 타는 남편에게 에어컨은 못 사줄 망정, ~ 껌딱지라도 떼어주는 게 맞다. 그게 육아공동체라는 간판을 내걸고 성업(?) 중인 우리집 창건(!) 취지에 맞다. 그나저나, 저렇게 강력한 부녀인력(引力)을 형성하고 달라붙는 껌딱지를 어떻게 떼어내지? ㅋㅋ

한겨레 베이비트리 http://babytree.hani.co.kr/archives/19935 

Posted by 에코살롱 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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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루시파 2011.07.08 15: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정말 부러운 이야긴데요.
    울 아이는 제가 아빠옆에 가라고 하면 울더라구요..ㅡㅜ

  2. 문슝 2011.07.08 16: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루아침에 변심한 연인에게 이별통보를 받았으니,
    절 어여삐 살펴줄 공동체를 어서 찾아나서야겠어요 ㅋㅋㅋ
    소율이와 동병상련을 나누고 싶네요 ㅋㅋㅋㅋ

  3. 모시나비 2011.07.09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칭구~~넘 재밌당^^ 근데.."일할래, 밭 맬래"가 아니라..."애 볼래, 밭 맬래" 아닌감??ㅋㅋ 소율 아빠의 '딸바보' 완전 인증 가능한 1인^^ 힘들다고는 하지만...뭐 그래도 아직 최강 딸바보임!!ㅋㅋ

인류학자(!)인 나는 모든 의사소통을 쌍자음으로만 한다는 ‘쌍자음의 세계’에 현지조사를 나와 있다. 원래 이름은 소율이지만, 집에서는 ‘율뽕’으로 통하는 아이의 집에 머물고 있다. ‘소율아~’라고 ‘부르면 들은 체 만 체 하지만, ‘율!’이라고 부르면 자동으로 고개가 돌아간다. 과연 듣던 대로 쌍자음의 세계로다.

율뽕이네는 먹는 걸 좋아한다. (), , 등 쌍자음로 된 주식과 된소리화된 후식-(사과), , (수박), (토마토), 나나(바나나)를 먹고 산다. 율뽕이네는 ‘일단, 잘 먹고 보자’는 철학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집에 비해 엥겔지수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재밌는 것은 애나 어른이나 서로 먹으려고 경쟁을 한다는 점, 그리고 신기한 것은 외할머니, 엄마, 율뽕이로 이어지는 모계 3대의 식성 싱크로율이 90% 에 육박한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먹는 게 3대를 간다>는 책도 나왔는데, 이는 율뽕이네에서 완벽히 증명되고 있었다.

먹었으니 이제 싸는 문제를 살펴보자. 모든 아이가 그렇듯, 율뽕이도 ‘똥’을 좋아한다. 자기가 눈 똥을 보고 배꼽을 잡고 자지러지게 웃는다. 자기 똥에만 집착하는 게 아니다. 엄마, 아빠가 화장실을 갈 때도 꼭 따라와 화장실 문턱에 앉아서 놀거나 변기 앞에 앉아서 놀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다 보니 이 집에서는 도저히 프라이버시라는 게 없다. 가장 은밀하고 개인적인 작업조차 모두 오픈해야 한다. 처음에는 뭐 이런 희한한 집이 다 있나 싶었는데, 지금은 적응이 되었는지 밖에 나가서도 화장실 문을 닫으면 답답하고 이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율뽕이 부모는 ‘뭐든지 때가 되면 한다, 억지로 시키지 말자’는 철학을 가지고 대소변 훈련을 시키지 않고 있다. 율뽕이는 아직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하지만, 똥을 누고는 엄마나 아빠에게 가서 기저귀를 가리키며, 똥똥’이라고 말하면서 사후조치를 요구한다. 최근에는 사전 변의를 느끼기 시작했는지, 잘 놀다가 갑자기 엄마, 아빠에게 가서 ‘똥똥’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과연 스스로 변기에 앉게 될 날이 올런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다음은 사회성. 율뽕이는 남자를 심하게 좋아한다. 대체로 낯을 안 가리고 누구에게든 잘 가서 팍팍 안기지만, 특히 남자들에게 먼저 반응하고 애교를 떠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벌써부터 지 엄마를 닮아서 남자를 밝힌다고 하지만, 인류학자인 내가 관찰한 바로는 남자들을 부르는 호칭, , , , 아저, 할아버지(하라) 에 쌍자음(센소리)가 들어가기 때문이 아닐까 판단된다.

율뽕이는 빵빵(자동차)을 좋아한다.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할 때 ‘저기 빵빵, 좀 봐, 빵빵온다’ 하면 혹~ 한다. 사람들은 여자 애가 자동차를 좋아한다고 신기해 하지만, 율뽕이 입장에서는 자동차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살고 있다. 율뽕이 부모는 장난감을 사주지 않고 사람들에게 얻어서 쓰는데, 우연히 자동차가 압도적으로 많았을 뿐이다. 단 예외적으로 아직 뽀로로 비디오, 뽀로로 장난감 등 뽀로로의 세례를 받지 않았음에도, 가끔 밖에서 ‘뽀로로’를 만나면 반가운 척을 한다. 뽀로로는 한 눈에도 반할 수밖에 없는 정말 치명적 매력을 가졌나 보다.

이렇게 율뽕이네 모든 의사소통에는 쌍자음이 들어간다. 이 맘때 아이들이 센소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옷을 입거나, 신발을 신거나, 똥을 눌 때는 ‘끙’이라고 하고 다 했을 때는 ‘되따(됐다)’라고 한다. 기분이 좋을 때는 ‘까꿍, 따꿍, 라꿍’ 등 꿍이라는 말을 붙이며 놀고, 괜히 심심할 때는 ‘뽕뽀로뽕뽕~!!’하면, 율뽕이가 ‘뽕뽕!!’이라고 화답한다. 가끔 ‘띠띠꿍’, ‘랄라뽕따이’, ‘빵꾸똥꾸’라는 말을 쓰는데, 이 말들은 주로 호칭이나 대명사로 쓰이지만, 감탄사, 형용사 등으로 품사 변용이 너무 버라이어티해서, 아직 일정한 룰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쨌든 지금까지 쌍자음은 율뽕이네 가족을 경쾌하고 신나게 만드는 중요한 포인트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최근 반갑지 않은 새로운 쌍자음의 세계에 입문했다. 어떤 노력에도 타협과 소통이 안 되는 상황, 바로 새로운 쌍자음 ‘떼쓰기의 세계’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떼쓰기’는 본 인류학자의 지상 최대의 연구과제가 될 전망이다.

나는 다시 공부를 한다면 문화인류학을 했을 거란 이야기를 하고 다닌 적이 있다. 그 이유는 낯선 세계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과 탐구심, 역마살 등등 때문에 문화인류학이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화인류학을 공부하기 위해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에 갈 필요 없이, 아기를 낳고 자동적으로 인류학자가 되어 버렸다! 그것도 육아라는 낯선 세계의 현지조사부터 하고 있다. 엄마라는 존재처럼 생애에 걸쳐 한 인간에 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인류학자가 또 있을까? 다만, 어쩌다 현지조사를 나오긴 나왔는데, 인류학적 훈련이 덜 되었다는 점이 문제다. 인류학자란 현지인(아기)의 관점을 주요한 가치를 인정하고, 관찰하고 듣는 능력이 우선인데, 자주 이 사실을 망각하고 내 관점과 입장이 앞선다. 특히 아이가 떼를 쓸때 그렇다.

인류학자의 현지조사에서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문화가 충돌하기 마련이고, 이로 인해 각종 오해와 혼란이 일어난다. 육아의 세계가 딱 그렇다. 이 세계에 입문한 이상 충돌과 혼란은 통과의례, 아니 필수다. 다만 인류학자가 그러하듯 문화상대주의적 입장으로 자기 주장과 개입을 줄이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대하고자 할 때, 그 충돌과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비가 오면 센티멘탈해지는 나와 본격적인 떼쓰기가 시작된 아기 ‘율뽕’이와의 잦은 충돌이 예상된다. 아무리 쌍자음의 세계에 살고 있지만, 내 입에서 진짜 쌍자음 나오는 일이 없어야겠다.ㅋㅋㅋ

한겨레 베이비트리 http://babytree.hani.co.kr

Posted by 에코살롱 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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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licio 2011.06.24 18: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나마 비읍과 디귿이 주라서 다행입니다. 아이들은 시옷이나 쌍시옷보다는 쌍지읒 발음이 더 쉬운가봐요. ㅋㅋ

  2. 나무네숲 2011.06.26 06: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동적인 논문? 잘 읽고 갑니다.
    최근 들어 가장 장황한? 포스팅이네요!
    역쉬 고수는 한 방? 질러줄때를 잘 아는 법인가봅니다!ㅎㅎ

  3. 쓸ㅋㅋ 2011.06.27 1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이거 정말 너무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사례까지 담긴 멋진 글이네요!

    사진만 보던 소율이의 특징과 가족들의 생활모습까지 전부 요약된 즐거운 포스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