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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2.13 모성애가 수상하다 (2)
  2. 2011.07.08 남편, 아니 아빠가 변했다. (6)

아기를 낳는 순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덤덤했다. 처음에 든 생각은 ‘아, 이제 끝났구나’, 그 다음은 ‘후~, 시원하다.’ 그게 다였다. 옆에 분만을 도왔던 남편은 아기를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갑자기 진통이 진행되는 바람에 받아만 놓고 못 먹게 된 아침 밥상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아가야…ㅋ) 그리고 밤새 진통하느라 잠을 못 자서 그런지 스르르 잠이 오기까지 했다. 아, 잠들기 전에 한 가지는 궁금했다.

“딸이야, 아들이야?”

“응, 딸이야. 딸”

우리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성별에 대한 아무 지식이 없었다. 임신 초기에 2~3번 정도 초음파 검사를 하고, 5개월째부터 병원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산이라는 이유로 기형아 검사를 권하고, 심전도 초음파 등을 강요하자, 불쾌해서 아예 발길을 뚝 끊었다. 그저 배가 워낙 컸고, 피부 트러블이 심하고, 태동도 요란스러워서 시중에 나도는 설에 따라 어렴풋이 아들일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딸이란다. 만삭일 때 내 배를 보고 지나가던 할머니가 ‘아들이네. 배만 보면 알아’ 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거의 ‘아들’로 굳히기에 들어갔었는데, 이런 반전이 있을 줄이야…

그런데 참 신기한 건, 출산 후에도 그다지 감동스러운 연출이 되지 않았다. 어, 이상하다. TV같은 데서 보면, 엄마가 아기를 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너무 감동스러워 하던데, 난 왜 이러지? 나는 오히려 서먹서먹한 감정이 앞섰다. 뱃속에 있을 때보다도 더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할까? 누가 보면 낳고 싶지 않은 아기를 낳았다고 오해를 했을 지도 모른다. 어, 내 모성애가 고장 났나? 내 감정은 왜 뜨겁지 않은 거지? 뭔가 뭉클하고 눈물도 나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 그때부터 나는 내 모성애를 전격, 의심(?)하기 시작했다.

우선, 내 성격 탓도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남들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일을 특별하지 않게 생각하는 희한한 재주가 있다. 예를 들어 생일 같은 거, 기념일 같은 거 특별하게 생각 안 한다. 웨딩드레스 입고 하는 결혼식도, 한복 입고 하는 돌잔치 같은 것도 귀찮아서 안 했다. 그리고 약간 매정하다고 해야할까? 감수성이 풍부해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보면서 남편이 눈물을 흘리면, ‘울 일이 그렇게 없냐?’며 놀리곤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설명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의심이 가는 부분이 출산 후 내 몸 상태다. 현실적으로 내 몸 추스르기도 바쁜 거다. 막판에 힘을 주면서 그 아래(!)가 약간 찢어져서 생긴 그 고통과 그 아래쪽 사정 때문에 힘껏 힘을 주지 못해 생긴 지독한 변비 탓에 일주일 동안은 온통 신경이 거기에 쏠려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젖도 안 주고 애를 방기했다는 게 아니다. 기능적으로 할 일은 다 하면서, 딴 데(아래쪽, 뒤쪽) 정신 팔려 있었다는 얘기다.

상대적으로 남편의 부성애는 지극정성이었다. 퇴근해서 쪼그려 앉아 똥 기저귀를 빨고, 아기 목욕시키고, 자다 울면 항상 먼저 일어나 안아서 재웠다. 24시간 물리적으로 같이 있는 건 나였지만, 내용상으로 주양육자는 남편이었다. 열 나는 거, 눈곱 끼는 거, 이 나는 거 등 아기의 이상증세나 조금의 변화 조차도 남편이 항상 먼저 눈치를 챘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니 서서히 아기가 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기가 원할 때면 젖을 시도때도 없이 물렸다. 젖을 먹이는 행위를 통해서 나와 아기 사이에 애착이라는 것이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점점 고슴도치 사랑처럼 내 눈에는 내 새끼가 제일 예뻐 보이고, 다른 엄마들이 그러는 것처럼 영재증후군도 생기고 했다. 우리 애가 정말 예뻐 죽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두 돌이 지나고부터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말 하나, 작은 행동 하나 모두 예뻐 보이고 신통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하지? 이런 행동은 어디서 배운 거지? 모두 예쁘고 신통하다. 다들 지금이 가장 예쁠 때라고 한다.

나는 거의 확신하기 시작했다. 모성애는 내 핏줄이라고 저절로 생기는 선험적인 본능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학습되고, 개발되는 거 아닐까? 엄마의 모성애만 특별한 게 아니라, 엄마든, 아빠든 같이 하는 시간이 쌓이고, 보살핌과 정성을 쏟는 만큼 자식에 대한 사랑은 개발되는 것이고, 반대로 기회가 부족하면 쇠퇴될 수도 있는 거라고. 다시 말해 모성애가 모든 여성들에게 동일한 수준으로 보편적으로 존재하거나, 있다가도 쇠퇴하고, 없다가도 생기며, 강하기도 하고, 깨지기 쉬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한 여성들에게만 특별하게 있는 감정이 아니라, 특별히 강요된 감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들어진 모성’이라는 책을 쓴 프랑스 학자 엘리자 베트 바댕테르는 당초 모성애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린다. (참고로 내가 이 책을 읽고 학습된 게 아니라, 내가 내가 경험한 후천적 모성애에 대해서 떠들고 다니니 어떤 분이 이런 책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모성애는 본능이 아니라 학습된 것인데, 이 이데올로기는 19세기 들어 중상주의 정책에 따른 노동력 수요 증가가 국가로 하여금 여성들에게 모성애를 강요하게 했다고 분석한다. 이후 사회적 학습을 통해 점차 강화된 모성애는 오늘날 모든 어머니의 본능으로 발전하게 이르렀다는 것이다.

유난히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강조해온 모성애는 유교사상에 입각한 전통적 가부장 제도가 만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나는 여성운동가가 아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자기애가 강한 사람으로 내 근원적인 감정과 마주하고 관찰하고 내린 솔직한 결론일 뿐이다. 아마 내가 착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마음에 죄책감에 휩싸여 이런 결론을 못 내렸겠지만, 다행히 나는 적당히 이기적인 사람이므로… 어쨌든, 내 수상한 모성애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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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코살롱 마담

나는 이기적이고, 한 성질 한다. 다혈질에 호불호가 분명하고, 업앤다운이 좀 있다. 이미 혼인 시장에서는 노처녀로 분류되었을 때도 친정 엄마는 한 번도 결혼에 대해 압박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괜히 남의 집 귀한 아들 고생시킬까 봐!!!’였다. 그런데, 내 주위에서 뭣 모르고 어영부영 하던 남편이 얻어 걸렸다.^^

엄마는 “니 성격을 받아주는 사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천사!”라고 했고, 살아보니 남편은 짝퉁일지언정 천사라는 A급 브랜드를 달만 했다. 지랄 맞은 나랑 살면서도 남편은 화를 낸 적도, 큰 소리를 낸 적도 없다. 어떤 일에도 일희일비 하지 않고, 업앤다운 없이 편한 성격이다.(어떤 사람들은 이런 사람이 한번 화 내면 무섭다고 겁을 준다. 아직 때가 안 온 걸까? 흐흐흐) 그런 성격은 미치고 팔짝 뛸 일이 많은 육아에서 빛이 났다. 신생아 때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밤낮 없이 울어도 싫은 소리 한 번 안 내고, 안아달라고 보채면 팔이 떨어져 나가도록 안아주었다. 나는 그렇게 못하니, 자연스럽게 육아는 아빠 몫이 되어 갔다. 다른 건 몰라도 젖을 물릴 땐 재우는 건 내 몫이었는데, 이제 젖도 끊어지니 잘 때도 아빠에게 딱! 붙어서 잔다.


 

나는 이런 남편이 육아와 살림에 재능이 있다고 치켜세웠고, 남편도 그런 흑심(!) 가득한 칭찬을 싫어하지 않았다그리고 육아휴직, 또는 아예 전업주부가 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는 했다. 사람들은(특히 같은 엄마들은) 엄마를 귀찮게 하지 않는 우리 딸을 보고 ‘효녀’라고 했고, 나도 그런 딸에게 모성애보다는 무한한 동지애를 느끼곤 했다. ‘징징’거리거나 떼를 쓸때 ‘아빠한테 가봐!’라는 한 마디면 만사 오케이였다. 남편은 신기하게 아이의 요구나 불편을 알아내 해결해 주었다.(일례로 이가 나느라 아파하는 걸 먼저 알아채고, 최근엔 토마토 껍질이 입 천장에 붙어 ’낑낑’거리는 걸 보며 그걸 빼내주었다. 나는 절대 몰랐음-.-;;;) 특히 나는 아기가 울면 그 소리가 그렇게 듣기 싫은데, 남편의 귀는 신기하게 잘 참아냈다. 불혹의 나이는 아직 멀었는데, 흔들림 없는 불혹의 정신은 높이 사줄만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 하고도 몇 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요즘 남편의 입에서 슬슬 한숨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아기 목욕시키고, 책 읽어주다 재우고 나면, 자로 뻗어서 ‘아이고…’, ‘휴우~’ 톤다운된 한숨 메들리가 흘러나오곤 한다. 그런데 남편이 육아의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 시점이 하필 여름이라는 것이 문제다. 여름은 더위를 많이 타고 땀을 많이 흘리는 남편에게 쥐약이다. 안 그래도 가만 앉아있어도 더워죽겠는데, 요 껌딱지 같은 딸내미가 와서 달라붙으니 남편이 사정이 딱하다. 특히 밤에 문제다. 남편이 딸내미를 재워놓고 슬그머니 빠져 나와 자리를 옮기면 어느 샌가 알아채고 따라와 딱 붙는다. 그제 밤에는 방이 덥고 답답해서 슬그머니 거실로 나갔다고 한다. (나는 상황파악 못하고 쿨쿨^^) 소파에서 겨우 잠들었는데, 딸내미가 귀신 같이 따라 나와서 소파 위로 올라오더라는 거다. 이쯤하면 TV에서 기어나온 ‘링’의 귀신보다 더 무서웠을 듯^^.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나와보니 둘이서 대충 엉겨서 자고 있었다. 남편이 아직 꿈나라인 딸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깊은 한숨에는 딸바보로만 살았던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과 이제 손발 다 들었다는 포기,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묻어있었다.



대표 딸바보였던 남편, 지랄 맞은 내 성격도 참아냈던 남편이 점점 변해간다. 딸에게 딱 붙어서 충전하는 듯 했던 남편이 이제 좀 떼어달라고 나에게 SOS를 보내는 날도 있다.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며 아기를 달래고 어르던 남편의 입에서 자조적인 한숨 메들리 뿐만 아니라 치근거리는 딸에게 목소리를 내리깔고 경고성 멘트도 날리기 시작했다. 해도 별도 따다준다더니 하루 아침에 변심한 연인의 이별 통보를 받은 심정이 그럴까? 변심한 아빠를 보고 금방 울음이 터질락말락 울긋불긋, 표정이 아주 복잡미묘하다.(사실 아주 볼 만 했다.^^)



‘일 할래? 밭 맬래?’ 하면 ‘밭 맨다’는 말이 있는데, 새로운 속담 하나 추가다. ‘육아에 장사 없다!. 특히 혼자 하는 육아는 정말 답이 없다. 엄마, 아빠, 할머니, 도우미…누가 됐든 한 명이 육아를 전담하게 되면 누구라도 힘들 수 밖에 없다. 태초에 육아는 여러 사람이 같이 나눠 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걸 실감한다. 인류사를 보더라도 육아는 공동체 안에서 여럿이 하던 것이었다. 가끔 친정엄마가 옛날에는 애들을 몇 명씩 낳아 키웠는데, 기껏 아이 하나 키우면서 엄살이냐고 타박을 주지만, 옛날과 요즘은 비교 대상이 못 된다. 옛날에 내가 자랄 때만 해도 할머니, 할아버지,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 가며 공동체 안에서 자랐지, 엄마 손에서만 크지 않았다. 그때는 오히려 농구팀, 축구팀도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였지만, 공동체, 마을, 사회안전망도 무너진 요즘은 곡예 수준의 높은 희생 또는 자본을 요구한다.

요즘 부쩍 피로감을 호소하는 남편을 구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위기를 느꼈다. 더위 타는 남편에게 에어컨은 못 사줄 망정, ~ 껌딱지라도 떼어주는 게 맞다. 그게 육아공동체라는 간판을 내걸고 성업(?) 중인 우리집 창건(!) 취지에 맞다. 그나저나, 저렇게 강력한 부녀인력(引力)을 형성하고 달라붙는 껌딱지를 어떻게 떼어내지? ㅋㅋ

한겨레 베이비트리 http://babytree.hani.co.kr/archives/19935 

Posted by 에코살롱 마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