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열흘간 집을 비웠습니다. 집안의 큰 일을 치렀고, 이어 진안, 완주, 전주, 변산, 광주까지 전라도 일대를 무계획으로 돌아다녔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나는 날을 꼽으라면, 태풍 지나가던 날 전주에서의 하루밤일 겁니다. 향교의 부속건물을 리모델링한 한옥민박 양사재에서 묵었는데, 그날 밤 비 오고 바람 부는 소리를 온몸으로 들으며(느끼며) 잤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간밤에 기왓장이 날아갈까 밤잠 못 이루셨다는데, 저는 그 빗소리에 어찌나 단잠을 잤던지요.ㅋ 그 빗소리가 좋아 하루밤 더 머물고 싶었는데, 남는 방이 없어 아쉽게도 떠나야했습니다. 아쉬워서 더 그리운, 태풍 지나간 뒤 양사재의 모습입니다.

방문을 활짝 열어재끼고, 간밤에 태풍 지나가고 더욱 짙어진 흙냄새와 풀냄새로 잠을 깨워봅니다.
 

툇마루에 앉아 어제밤 미처 둘러보지 못한 집을 둘러보는 사이, 아빠는 아이를 안고 산책을 나갑니다.


집앞에는 빨간 스피라가...이날 밤 우리나라 최초 수제 스포츠카 스피라 회사 직원들이 양사재에 묵었더랬습니다. 고풍스러운 한옥과 빨간 스포츠카이 대비가 색다른 재미를 주네요.


벽에는 새빨간 우체통이 붙어 있는데, 우체통을 보니 누군가에게 편지를 부쳐야 할 것만 같네요.

 
보기만 해도 정겨운 뒷뜰에 장독대...우리같은 도시 뜨내기들한테는 꿈도 못 꿀 귀한 살림이죠.


집안 구석구석 먼지 쌓인 옛날 살림들이 나그네들에게 소소한 눈요기가 됩니다.


아빠는 툇마루에 누워 기와꼬리 치켜올라간 하늘을 보고 있는 사이, 딸은 바둑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날카로운 눈빛, 앙 다문 입술, 바둑돌을 만지작 거리는 야무진 손매가 꽤나 진지하죠?


한옥 민박은 개방적입니다. 방음처리가 안 돼서 간밤에 우리 아기 우는 소리 때문에 본의 아니게 민폐도 끼치고, 오고가는 손님과 수시로 마주합니다.


오늘은 어디를 갈까...떠돌이 인생을 아이폰이 도와주는군요. (와이파이 잡히는 훌륭한 한옥!!!)


우리 세 식구 누우면 꽉 차는 방 사이즈에, 비에 눅눅할까 방에 불을 때는 바람에 땀을 삐질 흘렸어도 어릴때 시골 외갓집이 생각나 너무 반갑고 정겨웠더랬습니다. 특히 TV가 없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TV가 있었다면, 한옥이 아니었다면, 비오는 날, 비소리 바람소리만 오롯이 들으며 방구들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는 없었을 겁니다. 우리 세 가족만 있는 작은 우주를 생각한 제대로 행복했던 밤이었습니다. 양사재에서의 하룻밤 잊을 수 없을 거 같아요. 비오는 날은 양사재가 생각날 듯^^

아...숙박비에 아침밥도 포함되는데, 고기 없는 맑은 미역국에 고등어 한토막, 가지무침, 감자조림, 김치, 젓갈만 나오는 소박한 밥상이지만 너무 깔끔하고 맛납니다.  

홈페이지:
http://www.jeonjutour.co.kr/
Posted by 에코살롱 마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