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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7.15 밥 하기 싫을 땐 감자,상추,국수! (1)

빗소리에 눈을 떴다. ‘아…또 비야?’ 이젠 징글징글하다. 8시가 넘었는데도 어두컴컴하다. 눈 떠지는 시간도 자꾸 늦어지고 몸도 찌뿌듯하다. ‘삼 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는 옛말이 있는데, 석 달은커녕 한 달도 힘들다. 정말 지루하고 멜랑꼴리하다. 이불이 끈적이며 피부에 엉겨 붙고, 빨래에서 썩는 냄새가 폴폴 올라온다. 밖에 나가지를 못하니 애나 나나 짜증 아주 지~대로다.

어떤 분이 물었다.

“이렇게 눅눅한 장마에도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내가 ‘재미지상주의자’라는 걸 알고 하는 말이다. 나는 답했다.

“장마철의 기분을 극복하려고 하기보다 장마의 눅눅함과 멜랑꼴리한 기분을 즐기는 게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북구에 사는 사람들이 왜 우울증이 많을 수 밖에 없는지, 남아시아 사람들이 몬순기에 삶이 얼마나 질척거릴지, 그런 걸 상상하면서요.^^

장마철에는 그냥 장마철답게 멜랑꼴리하게 사는 방법 밖에 없다. 그게 자연의 섭리다. 이른 바, ‘장마철 우울증’은 햇빛을 많이 못 보게 되면서 신체리듬이 깨져서 생기는 증상이기 때문에, 해를 끄집어내는 것은 신의 영역이지 우리가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한다. 특히 딸린 새끼가 있는 엄마들은 더 먹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몸이 늘어지고, 기분이 꿀꿀하니, 밥 하기가 싫다는 거다. 요리한답시고 뜨거운 불 앞에서 서고, 뜨거운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조차 끔찍하다. 홀몸이었다면, 크게 고민 안 한다. 한두 끼쯤은 거뜬히 건너 뛰거나, 한동안 굶주렸던 바깥세상의 불량식품들과 다시 접속하면 간단하다. 그런데 애 딸린 몸이다 보니 그렇게도 못 한다. 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ㅋㅋㅋ

이럴 때를 대비해 자주 애용하는 구황음식이 있다. 구황(救荒)이란 원래 흉년 따위로 기근이 심할 때 빈민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애 엄마도 구황음식이 필요하다. 밥 하기가 힘들거나 밥 하기 싫을 때도 밥 해야 하는 모순적 운명에 처해 있는 애 엄마한테 꼭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구황음식은 통째로 먹는 음식, 요리가 간편한 음식(내 구황음식들은 레서피라고 하기에도 미안할 정도로 초간편하다), 애나 어른이나 좋아하는 음식, 그리고 제철음식 또는 영양적으로 하자 없는 음식을 말한다. 요약하면, 간편하지만 괜찮은 음식이다.

첫 번째 구황음식! 예나 지금이나 ‘감자’다. 특히 요즘은 ‘감자’ 철이다. 나는 원래 전통적 구황작물인 감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퍽퍽한 게 싫어서인데, 사람들에게는 나중에 기근, 전쟁, 천재지변 등으로 어려움이 있을 때 지겹게 먹어야 할 구황작물인데, 뭐 하러 지금부터 열심히 먹느냐면서 말하고 다녔다. 그렇게 혹시 모를 미래에 먹을 음식이었던 감자에게 이번 장마에 제대로 신세를 지고 있다. 햇감자, 특히 직접 농사를 지은 감자는 껍질이 얇고 부드러워서 껍질을 까지 않고 그냥 요리할 수 있어서 간편하다. 원래 채소나 과일은 껍질에 좋은 영양소가 들어있기 때문에 껍질째 먹는 게 좋다. 감자에 묻은 흙만 쓱쓱 씻어내고 삶아먹고, 쪄 먹고, 구워 먹고, 볶아 먹는 거다. 다른 양념도 별다른 반찬도 필요 없다. 그냥 굵은 소금만 치면 되고, 김치만 있으면 훌륭한 한 끼 식사다. 아기 먹이기도 한결 수월하다. (여름엔 감자, 겨울철엔 고구마다!)

두 번째는 상추쌈! 이다. 요즘처럼 상추가 흔한 때도 없다. 밭에 널린 게 상추다. 한 줄만 심어도 한 동네가 나눠먹을 수 있는 게 상추다. 무농약으로 해도 벌레도 잘 안 먹어서 기르기도 쉽다. 물론 상추쌈하면 삼겹살을 떠올리겠지만, 그러면 길어지고 비싸진다. 그냥 맛있는 쌈장 하나 만들어놓고 먹는다. 고기 대신에 있는 반찬 올려서 먹으면 된다. 삶아둔 감자가 있다면 상추에 싸 먹어보라. 강원도에서는 이렇게 먹기도 한다. 고기 대신 멸치반찬, 장아찌를 싸 먹어도 색다르다. 며칠째 우리집 밥상에 상추가 끊이질 않고 있다.

세 번째 구황음식! 묻지마국수! 밥 하기 싫을 때 국수만큼 훌륭한 것도 없다. 내가 워낙 국수를 좋아해서 그런지, 아이도 국수를 좋아한다. 여기저기 훌륭한 국수들도 많지만, 만들기 어렵고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복잡한 국수들은 구황음식 취지에 맞지 않는다. 내가 구황음식으로 애용하는 국수는 딱 두 가지. 묻지마!비빔국수랑 간장국수다.

간장국수 레서피는 나름 미식가인 친구가 알려주었다. 삶은 국수에 진간장, 참기름, 통째 듬뿍, 설탕 조금 넣고 비벼 먹는 아주 험블하기(!) 짝이 없는 국수다. 그런데 뻥 좀 보태서 어마어마하게 맛있다. 뭐 대단한 요리인 거마냥 예쁜 그릇에 담고 신김치랑 먹으면 더 맛있다. 먹고 나서 기름, 통깨 투성이가 된 아이를 씻기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그 번거로움을 감수할 만큼 훌륭한 국수다.

묻지마!비빔국수는 말 그대로 냉장고에 남은 아무거나 넣고 비벼먹는 국수다. 밖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음식이고,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여름철에 흔한 시어터진 열무김치, 아주 훌륭한 재료다. 하다못해 김장김치가 아직 남았다면, 양념 걷어내고 송송 썰어 비벼 먹어도 좋다. 이때 초고추장도 좀 넣어서 새콤달콤하게 먹는 게 좋다. 물 김치 건더기, 오이 소박이 남은 양념도 좋다. 상추쌈 싸먹고 남은 상추, 오이, 부추는 말할 수 없이 좋다. 재료가 좀 시원찮으면 참기름과 통째 토핑을 좀 넉넉하게 넣어 참기름 맛으로 먹으면 된다.

이렇게 간편하게 해 먹을 궁리하다 보면 해뜰날 오겠지? 걱정마시라! 해 뜨다 못해 뜨거운 여름날이 기다리고 있으니…흐흐흐

한겨레 베이비트리 http://babytree.hani.co.kr

 

Posted by 에코살롱 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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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루시파 2011.07.15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가 감자를 삶아줘도 잘 안먹길래 치즈가루에 굴려서 주거든요.
    그랬더니 그나마 좀 먹더라구요..으흑.
    저도 비오니.. 끔직하니 밥하기가 싫어서 여기 저기 눈치보고 있습니다.
    누가 밥 사준다고 나오라고 안 하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