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열공중인 마크로비오틱에서도 양파를 조화로운 채소로 본다. 땅속과 땅위 접경에서 자라는 호박, 양배추, 브로콜리 등과 함께 음성과 양성 양쪽 에너지를 균형있게 갖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모양이 둥근가? 음양 에너지의 조화, 모 없이 둥글둥글한 모양, 부엌의 '약방의 감초', '인생의 단맛, 쓴맛'처럼 오묘한 맛까지, 양파의 매력에 안 빠질 재간이 없다.
기회가 닿아 올 겨울부터 양파농사를 지어보기로 했다. 혼자는 아니고, 양파공동체 형태로 여러 명이서 200평 남짓한 밭을 빌려 공동으로 짓는 거다. 일을 꾸미신 분들은 따로 있고, 우리는 그냥 묻어가는 처지지만, 그래도 개인텃밭만 할 때와는 다른 책임감과 노가다가 뒤따른다. ㅋㅋ
단맛을 공짜로 보려고 했어? 양파답게, 알싸한 맛부터 선보인다. 밭에 거름을 넣은뒤 땅을 갈아엎는 일은 지난 주 끝냈다고 해서 이제 양파만 심으면 되겠지 했는데,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생각이었다. 고랑을 만들고, 땅을 고르고 '밭 만들기'가 감히 화전민의 심정을 이해하게 한다. 운동도 이런 운동이 없다. 아침 9시부터 해질녁 5시까지, 일 하는 사람이 빤 하니 꽤 부리기도 어렵다. 누구는 말이 좋아 공동체지, 집단노동이라고 성토했고, 평소 쫌 엄살을 쫌 피우는 과인 남편이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고 해도 괜한 꽤병은 아닌 듯 했다.
아놔...양파농사 짓다가 딸내미 술꾼 만들게 생겼다. 엄마가 마시는 막걸리 젖 받아먹는 걸로 모자랐는지, 막걸리 마신 잔을 깨끗이 핥고 있다. 그 모습이 웃겨서 어른들이 몇 방울 보태주니 냉큼냉큼 비워낸다. 옛날부터 아이들이 어른들 술 심부름하다가 훔쳐먹었듯 예로부터 막걸리는 아이들의 은밀한 사랑을 받아왔기는 했어도 이건 좀 너무 이른 거 아닌가?ㅋㅋ
농사일도 음양의 조화를 이루면 좋다. 남자들이 고랑을 만들고, 괭이로 덩어리진 흙을 깨면, 여자들은 쇠갈퀴로 자갈을 골라내며 땅 표면을 고르게 정리했다. 남자들이 이랑을 만들고 재를 뿌려놓으면, 여자들이 모종을 주먹 한 개 간격으로 나란히 놓고, 마지막 흙을 덮어주고 발로 살짝 밟아주는 의식(?->실제로 튼튼하게 잘 자라라 어쩌고 저쩌고 중얼중얼하는 분들도 계셨고, 땅거미가 지는데 저러고 있으니 꼭 토템의식 같았음)으로 마무리를 했다.
대여섯개 고랑 중에 두 고랑 2천개 달랑 끝냈을 뿐인데, 간만에 몸을 제대로 썼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ㅋㅋㅋ 앞으로도 1년 동안 이 밭에서 자식 키우고 양파도 키우고, 자연도 배우고 사람도 배우게 될 것이다.
'꼬마농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농사, 베란다에서 다시 시작! (2) | 2010.11.26 |
---|---|
꼬마농부 특강: 가을에 행복해지는 8가지 방법 (5) | 2010.11.14 |
양파농사 개시 (4) | 2010.11.08 |
배추의 운명 (0) | 2010.11.01 |
[옛날 말에...] 가을에 밭에 가면 가난한 친정에 가는 것보다 낫다 (2) | 2010.10.25 |
[시쳇말에...] 캐면 캘수록 고구마 줄기 (2) | 2010.10.18 |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살랑살랑봄바람 2010.11.08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기가 정말 천사같네요^0^
ㅋㅋㅋ쫌 그렇죠?
근데, 잘 때만..ㅋㅋㅋ
소율아빠 2010.11.08 1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고한 남편 얘기는 없네?? 글구 고랑이 아니라 이랑이라고 하거나 두둑이라고 해야한다고 지적받았어욤.. 나도 고랑이라 했다가 같이 일하는 우보님이 지적했음..^^
그런가요?ㅋㅋㅋ
무식쟁이 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