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거절이 어렵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예전엔 거절을 못해서 참 힘들었고, 질질 끌다가 상대방도 힘들게 만들곤 했다.  이젠 경험적으로 안된다고 말할 때는 질질 끄는 것보다는 빠르게 말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된다고 말하는 방식도 고민이다. 단호한 게 좋을 때도 있고, 부드럽게 에둘러 말하는 것이 현명할 때도 있다. 요즘 아이에게 한참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가르친다. 그런데, 단호하게 무섭게 권위적인 것보다 부드럽고, 유머를 담아 전달할 때 더 먹힐 때가 많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파리의 에술가 Paule Kingleur의 거리 프로젝트를 보면서 잠깐 거절과 금지의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동네 아이들 600여명과 주차를 못 하게 하는 포스트에 거는 작은 화분을 설치하는 작업을 했다. 화분으로 쓰일 우유팩은 재활용했고, 못 쓰는 천으로 우유팩을 예쁘게 바느질했다. 화분에는 토마토, 무, 꽃을 심었고, 동네 아이들에게 이 화분을 책임지고 기르도록 분양을 했다.

 


이 작업에는 그동안 자동차가 거리를 차지한 거리를 아이들에게 돌려주자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자동차는 아이들을 거리에서 쫓아냈다. 주차를 금지시키고, 다시 아이들에게 거리를 돌려줄 수 있는 아주 상징적이고 유머러스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거리에서 만나는 금지의 방식이 참 촌스럽다고 느낀다. <노상방뇨=가위그림>는 차라리 유머러스한 편이다. 우리 동네에는 <무단행단=사망>이라는 중앙분리대가 있다. 주차시 견인조치, 쓰레기 투기시 고발 등등도 이야기의 방식을 좀 바꿀 수는 없을까?

 


Posted by 에코살롱 마담